사라지는 것에 대한 사진적 개입
1.
인간이 모두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존재들이 딱히 우리를 그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
압선에 부딪쳐 매년 5억 마리가 죽어간다는 새들이나, 상아를 노리는 밀렵꾼들에 의해 고작 150
년 만에 1000만 마리에서 50만 마리로 줄어들었다는 아프리카 코끼리들은 더더욱 그럴 것 같다.
아쉬워할 것들이 있다면 글쎄, 고작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곁불을 쬐며 겨울나기를 한다는 바퀴벌
레들 정도일까.
부드러운 비가 올 거야 그리고 흙 내음도
또 들릴듯 말듯 소리 내며 선회하는 제비들도
밤에 노래하는 연못의 개구리들도
떨리는 흰색의 야생 자두나무들도 찾아올 거야
낮은 울타리 쇠줄에 앉아 변덕스럽게 휘파람 불며
울새들은 불타는 깃털로 갈아입을 테고
그리고 아무도 전쟁에 관해선 모를 거야 아무도
전쟁이 끝났는지 관심도 없겠지
아무도 상관 안 할 거야, 새도 나무도
마침내 인류가 절멸하더라도
그리고 새벽에 깨어났을 때 봄은
우리가 사라져 버렸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할 거야
몇 년 전 지구를 뒤덮은 바이러스로 인해 인간들이 자발적으로 집에 감금되었을 때, 세계 곳곳의
야생동물들은 자못 행복해 보였다. 영국 랭커셔의 도심에 산양들이 내려와 회전식 놀이기구를 타
며 신나게 놀았다. 사자들은 도로에 누워 낮잠을 잤고, 토끼들은 마을에 내려와 잡초들을 먹어치
웠고, 캥거루는 무리를 지어 마을 상점가를 기웃거렸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앨런 와이즈만은 < 인
간 없는 세상 >에서 인간이 사라진다면 바로 이튿날부터 자연이 우리의 흔적을 청소하기 시작할 것
이라고 썼다. 인간 따위에게는 아무런 미련이 없다는 듯이 그렇게.
2.
김승환은 제주의 자연에 대한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작업을 지속해 온 작가다. 범박하게 분류하자
면 제주에서 작업하는 이들은 대체로 4.3사건으로 상징되는 제주의 무거운 역사적 시간이나, 1만
1천여 신이 산다는 제주의 다채로운 신앙과 문화, 혹은 장대한 한라산과 거친 제주 바다로 대표되
는 독특한 자연 환경의 무게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이 세 가지는 마치 큰 중력을 지닌 항성처럼
작가들의 작업을 끌어당기는 힘을 지니는 듯하다.
다시 한번 성급한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전통적으로 자연을 찍는 사진가들
은 대체로 큰 판형의 카메라를 사용해서 자신이 보고 느낀 빛과 바람을 최대한 포착하려 한다. 현
실 세계의 자연이 지닌 압도적인 디테일을 담아내기에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광학적 용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여러 번 현장에 방문해서 다양한 시간대의 빛
을 사진으로 거듭 찍어내며, 그 과정에서 만들어낸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색채, 질감은 경쟁을
위한 그들의 무기가 된다.
하지만 제주의 자연을 찍은 김승환의 흑백 사진은 적잖이 투박하고, 심지어는 조금쯤 모호
해 보인다. 그의 사진에는 빛과 바람의 미세한 떨림보다는, 대상 그 자체를 인화지에 마구 눌러 찍
은 듯한 둔탁한 존재감이 있다. 심지어 그 위에 스프레이로 거칠게 그려 넣은 X자 표식은 그가 일
반적인 자연 사진가들과는 다른 곳을 향한다는 것을 직설적으로 말해 준다.
김승환은 ‘카페놀(Caffenol)’이라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현상액
(developer) 대신 커피를 사용해서 흑백 필름을 현상하는 대체 기법이다. 그 원리는 대체로 이렇
다. 커피에 포함된 카페인이 환원제로 작용해서 흑백 필름의 은염을 금속 은으로 전환한다. 탄산
소다를 약간 첨가하여 알칼리 환경을 만들어서 커피가 제대로 작용할 수 있도록 돕고, 비타민C를
추가로 넣어 현상력을 보강한다. 잔여 은염을 씻어내는 고정액(fixer)으로는 소금물이나 아황산
나트륨을 주재료로 특수 제작한 친환경 고정액을 쓴다.
사진을 단지 이미지를 얻어내기 위한 행위로 정의한다면, 카페놀 현상이 지닌 장점은 찾아
보기 어렵다. 사진의 역사를 견인한 힘 중 하나는 분명 더 강렬하고 섬세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려
는 욕망이다. 카페놀로 만들어낸 김승환의 둔탁한 사진은, 그런 오래된 욕망과는 조금 동떨어진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감내하는 것은 환경을 덜 오염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것만
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인간은 생태계의 여느 최상위 포식자들과는 달리, 다른 생물들을 잔혹
하게 잡아먹을 뿐 아니라 그것을 지속시키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자연을 자기 마음대로 주물러
개조하며, 그 과정에서 끝없는 부수적 피해를 양산한다. 예를 들어 바다 건너 후쿠시마에서 매일
수천 톤의 오염수가 버려지는 상황에서, 작가가 애써 고작 욕조 몇 개 분량의 폐현상액을 줄이는
것이 자연에게 과연 무슨 큰 도움이 되겠는가.
3.
사진에 찍힌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진은 많든 적든 슬픔의 정서를 내포한다.
산맥이나 바다처럼 영원해 보이는 존재들을 찍은 사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열역학 제2
법칙이 지배하는 우주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번 흘러간 강물에 다시 손을 담글 수 없으
며, 두 번의 동일한 빛과 바람을 맞으며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진을 바라보는 우리는 어떤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는 일이 잦다. 인간이 자연을 파
괴하는 것을 고작 카메라 한 대로 막을 수는 없으며, 설령 몇 번 지켜낸다고 해도 결국 이 시간은
사라질 것이므로. 렌즈를 통해 자연을 바라보았던 우리의 작은 기억들은 대단히 쉽게 바스러지고
말 것이다.
카페놀로 현상하여 소금물로 정착한 필름의 특성 중 하나는, 기성품 티오황산나트륨 정착
액으로 처리한 필름보다 보존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은염을 완전히 씻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필
름은 천천히 희뿌옇게 변한다. 김승환이 찍은 제주의 자연이 파괴되거나 사라져가는 것처럼. 김승
환이 스프레이 래커로 작품에 그려넣은 철거 표시의 공격적인 날카로움과 천천히 흐려질 그의 사
진은 직설적이지만 기묘한 대조를 이루는 듯하다.
작가 김승환은 무엇을 보았고, 또 무엇을 지키려는 것일까. 어쩌면 모든 작업들은 허무주의
와 싸우는 한 개인의 실존적 싸움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작가 김승환이 우직하게 진행하는 카페
놀 현상은, 실제적인 관점에서는 그리 큰 효과를 지니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효과가
아니라 개입 그 자체다. 1880년대부터 기업에 의해 대량 생산된 흑백 필름의 화학적 프로세스를
인스턴트 커피나 소금물 같은 것으로 개입하여 교란할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한때 엄
청난 사업적 이윤을 가져왔던 흑백 필름 산업 자체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는 이중적인 역설을
지니게 된 요즈음으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마치 표류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은 잠깐
정착되어 머무르지만, 다시 희뿌옇게 사라진다. 사진도, 자연도, 그리고 빛과 바람 모두가 그렇다.
언젠가 우리가 사라졌을 때 아주 약간의 아쉬움이라도 남기 원한다면, 우리 역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연민을 지닌 채 어떤 것이든 시도해야 할 것이다. 제주의 자연을 바라보며 불안해하고 아쉬
워하는 작가 김승환의 작은 사진적 실천처럼.